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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7월 12일(주일) 주일낮예배

  • 본문 : 디모데전서 6장 6~10절
  • 제목 : 교회의 미래(13) 만족을 누리는 지혜
  • 설교 : 주재형 담임목사

교회의 미래(13) 만족을 누리는 지혜 - 스터디 가이드
Study Guide

교회의 미래(13) 만족을 누리는 지혜

디모데전서 6:6~10 | 송파제일교회 주재형 목사

핵심 설교 요약

1 맘몬(돈)의 유혹 앞에 선 그리스도인

자본주의 시대의 정점 속에서 우리는 물질의 영향력 아래 살아갑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였던 록펠러조차 "얼마나 있어야 만족하겠느냐"는 질문에 "Just a little more (조금만 더)"라고 답했듯, 인간의 소유욕은 끝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부하려 하는 욕망'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이며, 영혼을 파멸과 멸망의 시험에 빠뜨리고 결국 믿음에서 떠나게 만든다고 엄중히 경고합니다.

2 빈손의 인생론: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이 고백은 인생의 허무함을 말하는 슬픈 한탄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아래에서 이 진리를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내 인생과 소유의 참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록펠러가 죽을 때 "모든 것을 남겨두고 갔다"는 보좌관의 대답처럼, 우리는 매일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주어졌음에 만족하는 자족의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3 자족과 경건의 위대한 연동

단순히 소유를 억제하는 것은 '금욕주의'일 뿐 신앙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위대한 선포는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경건은 내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을 의식하고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할 때 우리는 물질의 지배에서 벗어나 참된 영적 자유를 얻으며, 주님께서 선물로 허락하신 일상의 소박한 은혜에 감사의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 본문 말씀 (디모데전서 6:6~10)

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7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한눈에 보는 구조와 대조

세상의 자족 (스토아 철학)
방식 자기 수련과 의지로 소유욕을 끊어내고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킴.
한계 인간 내면의 공허를 근본적으로 채우지 못하며 냉소적인 금욕으로 이어짐.
복음적 자족 (자족 + 경건)
방식 오직 하나님 한 분과의 인격적 관계 안에서 나의 존재와 공급의 근원을 발견함.
열매 가진 것이 많든 적든 상관없이 감사와 평강의 예배를 드리는 역동적 신앙.

📊 탐심(우상숭배)과 일계명의 긴밀한 관계

돈을 사랑하는 상태 (우상숭배)
돈이 나의 안전과 행복을 책임질 '신'이 되게 함. 하나님의 섭리를 불신하며 결국 믿음에서 도망치게 됨.
일계명의 순종 (오직 하나님만)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말씀을 "오직 주 안에서만 만족하라"로 받아들여 평강을 누림.

📊 '돈을 사랑함'의 징후 요약

🧠

생각의 지배

하루 종일 자산, 주식, 돈을 늘릴 생각만으로 머릿속이 꽉 차 있는가?

😒

비교와 시기

타인의 경제적 성공이나 부유함을 지켜볼 때 마음에 질투가 끓어오르는가?

🔒

인색함과 두려움

소유를 잃을까 늘 두려우며, 이웃의 곤궁한 고통과 필요 앞에 눈을 감고 인색한가?

본문 심화 연구

원어 "자족" (아우타르케아, αὐτάρκεια)
6절의 "자족"으로 번역된 헬라어 '아우타르케아(αὐτάρκεια)'는 본래 스토아 철학에서 고결한 도덕적 독립성과 '자체적인 자립력'을 뜻하는 최고의 덕목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단어를 기독교적으로 완전히 재해석하여 사용합니다. 성경적 자족은 인간의 '자아적 강인함'이 아니라, 공급자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전적으로 신뢰함으로써 오는 '그리스도 의존적 만족(Christ-sufficiency)'을 뜻합니다. 내가 강해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채우심이 있기에 풍부에도 비천에도 처할 비결을 아는 상태입니다.
문맥 진리를 부패시키는 '돈'과 거짓 교사들의 거짓된 경건
바로 앞선 5절에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위협하던 거짓 교사들을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로 지목했습니다. 이어서 6절에서 "그러나(데, δέ)"라는 강한 대조의 접속사를 사용하며 '경건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자들'과 달리 '하나님을 소유함으로 만족을 누리는 자들'의 참된 이익을 제시합니다. 즉, 돈이 목적이 되고 신앙이 수단이 되는 영적 타락의 시대를 방어하려는 핵심 목회적 문맥입니다.
그리스도 중심 우리를 위해 스스로 가난해지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주와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모든 부요함의 근원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구유에서 태어나셨고 머리 둘 곳조차 없으셨으며,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모든 옷과 물과 피를 쏟아내시는 극심한 '빈손(가난)'이 되셨습니다(고후 8:9). 주님께서 친히 가난해지심은 우리를 주님 안에서 참으로 부요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 대속의 엄청난 은혜와 신비를 온전히 깨달을 때, 더 이상 이 세상의 썩어질 물질에서 만족을 찾지 않고 참된 부요이신 예수 한 분만으로 기뻐하는 성숙한 경건에 도달하게 됩니다.
자가 진단 알리스터 백 목사의 '돈을 사랑함' 8가지 점검표

나는 과연 돈을 사랑하고 있을까요? 다음 질문들을 주님 앞에서 정직하게 점검해 봅시다.

  • 생각의 지배: 돈에 대한 생각(내 자산 가치, 향후 수입, 보유 주식 차트 등)이 하루 종일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까?
  • 비교와 시기: 타인의 경제적인 성공이나 부유해진 모습을 볼 때 묘한 질투심과 속상함이 마음에 생깁니까?
  • 정체성의 왜곡: 나의 가치와 성공을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누구인가'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소유했는가'로 증명하고 싶습니까?
  • 가족과 관계 소홀: 더 많은 돈을 벌거나 자산을 늘리는 일에 몰두하느라 정작 가족과 소중한 동역자들을 소홀히 하고 있습니까?
  • 인색함: 내 소유를 조금도 잃고 싶지 않아서 주변 다른 사람들의 절박한 필요나 고통에 일부러 눈을 감아버리지는 않습니까?
  • 상실의 두려움: 언젠가 돈을 잃거나 자산 가치가 하락할지도 모른다는 상실의 불안과 두려움에 늘 짓눌려 있습니까?
  • 체면과 허영: 주변의 눈을 의식해서, 혹은 타인의 소비 수준을 쫓아가기 위해 무리하게 빚을 내서라도 일정 수준의 씀씀이를 억지로 고집합니까?
  • 예배의 인색함: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으로 가장 소중한 것을 구별해(첫 열매) 기꺼이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 쓰고 남은 잉여를 마지못해 드리고 있습니까?

생각과 나눔

Q1. 설교에서 나눈 알리스터 백 목사의 '돈을 사랑함에 대한 8가지 자가진단' 중에서 내 부끄러운 속마음을 가장 깊게 찌른 항목은 무엇입니까? 내 자산을 채우려는 조바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님 앞에 정직하게 고백해 봅시다.

Q2.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아는 인생의 엄연한 법칙입니다. 평소 "Just a little more (조금만 더)"를 바라는 욕망에 흔들렸던 삶의 영역을 고백하고, 오늘 내게 허락된 '먹을 것과 입을 것(일상의 은혜)'에 감사하는 연습을 나누어 봅시다.

Q3.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첫 번째 계명은 "오직 하나님 한 분 안에서만 참된 만족을 찾으라"는 선포입니다. 이 물질주의 시대 속에서, 이번 주간 돈의 지배를 이겨내고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며 '경건의 참된 유익'을 누리기 위해 결단해야 할 구체적인 신앙의 선택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