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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21일(주일) 주일낮예배

  • 본문 : 디모데전서 5장 1~16절
  • 제목 : 교회의 미래(10)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 설교 : 주재형 목사

교회의 미래(10)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 스터디 가이드 (호환성 버전)
Study Guide

교회의 미래(10)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디모데전서 5:1~16 | 송파제일교회 주재형 목사

핵심 설교 요약

1 조직이 아닌 영원한 '가족'으로서의 교회

바울은 디모데에게 성도들을 꾸짖지 말고 '아버지, 어머니, 형제, 자매에게 하듯' 대하라고 권면합니다. 세상의 조직은 목적에 부합하지 않으면 떠나야 하지만, 가족은 부족하고 연약할수록 더욱 챙기고 보듬는 곳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영원한 하나님의 가족'이며, 우리의 구원 역시 이 가족의 품(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2 존경과 필요를 채우는 '존대' (참 과부 돌봄)

당시 사회적 약자였던 '과부'들을 향해 바울은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고 명합니다. 여기서 '존대'란 마음의 존경뿐만 아니라 그들의 '실제적인 필요(물질적 도움)'를 채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동시에 이 도움이 교회의 일방적인 시혜로 끝나지 않도록 과부의 명부를 작성하여, 그들 역시 기도로 교회를 섬기고 돕는 능동적인 사역자로 세웠습니다.

3 매임의 역설: 참된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

'젊은 과부'는 자유를 얻어 신앙생활을 더 잘할 것 같지만, 실상은 욕심에 끌려 영적으로 타락(사탄에게 돌아감)할 위험이 높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차라리 시집가서 가정에 '매이라'고 권면합니다. 홀로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복이 아니라, 교회의 지체로 서로 얽히고 부딪히는 '매임(공동체성)' 속에서 우리의 성품이 빚어지고 신앙이 자라납니다. 결국 우리 모두는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해야 하는 영적 과부들입니다.

한눈에 보는 구조와 대조

📊 교회 내 권면의 태도 (딤전 5:1-2)

세상적/율법적 태도
방식 자신의 직분(권위)을 내세워 일방적으로 꾸짖고 비판함.
결과 서로 정죄하고 상처를 주며 교회가 차가운 율법 공동체로 변질됨.
복음적/가족적 태도
방식 아버지, 어머니, 형제 자매를 대하듯 사랑과 온유함으로 권면함.
결과 실수를 덮어주고 서로가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빚어지는 '하나님의 집'이 됨.

📊 참 과부와 젊은 과부의 영적 대조

젊은 과부 (향락을 좋아하는 자)
특징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정욕(욕심)에 끌려 자유롭게 돌아다님.
영적 상태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결국 사탄의 미혹에 빠짐)
참 과부 (하나님께 소망을 둔 자)
특징 의지할 가족이 없기에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주야로 간구함.
영적 상태 교회의 존대를 받으며 영적인 기도의 사역자로 든든히 서게 됨.

📖 교회가 '과부 명부'를 통해 얻는 4가지 유익

🎯

정확한 필요 채움

자녀가 있는 과부를 제외하여, 교회의 한정된 자원이 정말 절박한 이들에게 집중되게 함.

🛡️

이단의 미혹 방지

영적으로 취약한 젊은 여성들을 보호하고 거짓 교사들의 침투를 막아냄.

🤝

가족의 책임 회복

육신의 자녀들이 부모에게 효를 행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도록 가르침.

🙏

사역자로 세움

단순한 구제 대상을 넘어, 기도로 교회를 돕는 영적인 봉사자로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함.

본문 심화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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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존대하라" (티마, τίμα)
3절의 "존대하라"로 번역된 헬라어 '티마(τίμα)'는 단지 심정적인 존경이나 예의를 갖추라는 뜻만이 아닙니다. 이 단어는 '가치를 매기다, 값을 지불하다(honorarium)'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그 존경심을 담아 '실제적인 물질적 필요를 채워주어라'는 강력한 재정적 후원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입술로만 끝나는 사랑이 아니라 행동하는 믿음을 요구합니다. (참고. 약 2:15-17)
문맥 에베소 이단의 타겟이 된 젊은 과부들
왜 바울은 젊은 과부들에게 이토록 강한 어조로 경고(13-15절)했을까요? 디모데후서 3:6에 나오듯, 에베소 교회에 침투한 영지주의적 거짓 교사들은 남편의 보호막이 없어 경제적/심리적으로 취약한 '어리석은 여자들(젊은 과부들)'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미혹했습니다. 그들은 거짓 교리를 퍼뜨리는 통로로 전락하여 교회를 어지럽혔고, 바울은 이를 "이미 사탄에게 돌아갔다"고 표현하며 교회의 영적 방역을 철저히 명한 것입니다.
역사 1세기 여성의 증언과 과부 명부의 파격
1세기 그레코-로만 사회에서 과부는 가장 취약하고 버림받기 쉬운 계층이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가 이런 과부들의 명부를 따로 만들어 생계를 책임지고, 심지어 그들을 교회를 위해 주야로 기도하는 '공적인 영적 사역자'로 대우했다는 것은 당시 사회에서는 혁명에 가까운 일어이었습니다. 이는 교회가 핏줄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묶인 '진짜 가족'임을 세상에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였습니다.
그리스도 중심 영적 고아인 우리를 가족 삼으신 은혜
가족이란 부족함이 드러날 때 쳐내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그 연약함을 아파하고 감싸 안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영적인 고아'일 때, 당신의 목숨을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하셨습니다. (롬 8장). 우리가 교회 안에서 형제자매의 허물을 정죄하지 않고 서로의 짐을 질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우리가 먼저 그리스도의 피로 값없이 이 거룩한 가족의 일원이 된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생각과 나눔

Q1. 나는 교회에서 다른 성도의 실수나 부족함을 볼 때 세상의 조직처럼 차갑게 평가합니까, 아니면 가족의 허물처럼 여기며 덮어주고 기도합니까?

Q2. 홀로 편하게 신앙생활 하는 것보다 공동체(구역, 부서)에 매여 부딪히고 섬길 때 우리의 신앙이 성장합니다. 내가 귀찮음이나 상처 때문에 교회 안에서 '매임'을 거부하고 혼자만의 신앙에 머물러 있는 부분은 없습니까?

Q3. '참 과부'는 이 세상에 의지할 곳이 없어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었습니다. 나는 내 삶의 안정을 돈이나 사람(가족)에게 두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 한 분만을 참된 소망으로 삼고 주야로 기도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