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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3일(주일) 주일낮예배

  • 본문 : 창세기 9장 18~29절
  • 제목 : 함께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가정
  • 설교 : 주재형 담임목사

함께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가정 - 스터디 가이드 (호환성 버전)
Study Guide

함께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가정

창세기 9:18~29 | 송파제일교회 주재형 목사

핵심 설교 요약

1 심판 이후에도 변하지 않은 인간의 죄성

세상을 뒤덮은 거대한 홍수 심판으로 모든 악당들이 사라진 것 같았으나, 노아의 장막에서 일어난 사건은 인간의 근본적인 죄악(전적 타락)이 환경의 변화나 심판으로 결코 지워지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당대의 의인이라 불리던 노아 역시 완벽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기에 구원받은 연약한 죄인이었습니다.

2 에덴을 꿈꾸었으나 드러난 연약함

노아가 포도원을 경작하고 취해 벌거벗은 것은, 단지 윤리적 방종이 아니라 에덴동산(벌거벗었으나 부끄럽지 않던 완전한 평안과 하나님 나라)을 향한 갈망의 흔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타락한 세상에서 벌거벗음은 수치와 부끄러움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가정과 공동체도 천국을 꿈꾸지만, 현실에서는 끊임없이 서로의 연약함과 부끄러운 밑바닥을 마주하게 됩니다.

3 수치를 덮어주는 은혜, 함께 바라보는 하나님

아버지의 수치를 조롱거리로 삼은 '함'과 달리, '셈과 야벳'은 뒷걸음쳐 들어가 그 허물을 덮어주었습니다. 우리 안에는 자랑할 선한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알 때, 비로소 우리는 타인의 영적 실패를 비웃지 않고 덮어줄 수 있습니다. 노아가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했듯, 우리의 가정은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곳이 아니라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신 하나님을 함께 바라보는 곳이어야 합니다.

한눈에 보는 구조와 대조

📊 세상의 기대와 성경적 현실

세상의 기대 (유토피아)
해결책 세상의 악한 사람들을 제거하고 심판하면 깨끗하고 평화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 믿음.
한계 환경이 바뀌어도 내면의 죄악은 사라지지 않음. 다시 새로운 죄악이 반복됨.
성경적 현실 (전적 타락과 은혜)
해결책 인간의 마음 계획은 항상 악하므로, 우리를 구원할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은혜(긍휼)'뿐임.
소망 우리 안에서 답을 찾지 않고, 십자가에서 수치를 대신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

📊 연약함(수치)을 대하는 두 가지 태도

함의 태도 (정죄와 폭로)
반응 가족(부모)의 연약함이나 신앙적 실패를 발견했을 때 밖으로 나가 그것을 비웃고 까발림.
영적 상태 자신 역시 구원이 필요한 똑같은 죄인임을 망각한 교만한 상태.
셈과 야벳의 태도 (사랑과 덮어줌)
반응 수치를 보지 않으려 얼굴을 돌리고, 옷을 가져가 허물을 조용히 덮어줌.
영적 상태 인간의 완전함을 기대하지 않고, 긍휼을 베푸는 공동체의 모습.

📖 에덴동산과 노아의 장막 (평행구조)

🌳

에덴 (창세기 2장)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사람을 이끌어 경작하게 하심.

🍇

노아 (창세기 9장)

홍수 후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고 새 시대를 꿈꿈.

🚫

타락 전의 벗음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완전한 평안과 사랑의 관계)

🙈

타락 후의 벗음

포도주를 마시고 장막에서 벗음 (죄로 인해 타락한 세상에서는 숨기고 덮어야 할 수치가 됨)

본문 심화 연구

클릭하여 펼치기
원어 "덮으며" (카사, כָּסָה)
본문에서 셈과 야벳이 아버지의 수치를 "덮었다"고 할 때 사용된 히브리어 '카사(כָּסָה)'는 구약에서 죄를 가려주거나 덮어줄 때, 즉 '속죄(Atonement)'와 관련하여 매우 자주 사용되는 신학적 단어입니다. (예: 시편 32:1 "자신의 죄가 가려진(카사) 자는 복이 있도다"). 누군가의 허물과 수치를 사랑으로 덮어주는 행위는, 궁극적으로 우리의 죄를 덮어주시는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반영합니다.
문맥 새 인류의 시작과 반복되는 데칼코마니
창세기 저자는 아담의 타락(창 3장)과 노아의 실수(창 9장)를 의도적으로 평행하게 배치합니다. 아담은 동산에서 열매를 따먹고 눈이 밝아져 자신의 '벌거벗음'을 부끄러워했고, 새로운 인류의 조상인 노아 역시 동산을 가꾸고 열매(포도주)를 먹은 뒤 '벌거벗음'의 수치를 드러냅니다. 이는 홍수라는 거대한 물로 세상을 씻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 본성 안의 죄악은 전혀 씻기지 않았으며 인간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죄인임을 증명하는 장치입니다.
역사 노아의 축복: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고대 가부장제 사회에서 족장의 축복은 곧 예언과 같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노아가 셈의 행동 자체를 칭찬한 것이 아니라, "셈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찬양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인간의 선함에 소망을 두지 않고, 오직 셈의 계보를 통해 일하실 언약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실제로 훗날 이 셈의 족보를 따라 아브라함과 다윗이 나고, 궁극적으로 인류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게 됩니다.
그리스도 중심 우리의 수치를 덮으신 십자가
타락 직후, 하나님은 수치심에 떨며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입은 아담과 하와를 위해 짐승을 희생시켜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창 3:21). 노아의 장막에서도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수치를 보지 않고 겉옷으로 덮어주었습니다. 이 모든 '덮어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표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받아야 할 조롱과 수치를 골고다 언덕에서 발가벗겨진 채로 대신 당하셨고, 그분의 보혈과 '의의 겉옷'으로 우리의 모든 영적인 수치와 죄악을 영원히 덮어주셨습니다.

생각과 나눔

Q1. 홍수로도 인간의 근본적인 죄성이 해결되지 않았듯, 상황이나 환경이 바뀌어도 내 안의 죄성(이기심, 미움, 분노 등)이 그대로 남아있어 좌절했던 경험이 있습니까?

Q2. 가정이나 교회 공동체 안에서 나는 다른 이의 연약함이나 신앙적 모순을 볼 때 '함'처럼 정죄하고 들추어내는 편입니까, 아니면 '셈과 야벳'처럼 잠잠히 덮어주고 품어주는 편입니까?

Q3. 노아는 셈을 칭찬하지 않고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했습니다. 우리 가정이 서로의 연약함에 집중하기보다, 우리의 수치를 덮으시고 참 소망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함께 바라보기 위해 오늘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