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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4월 5일(주일) 주일낮예배

  • 본문 : 누가복음 24장 1~12절
  • 제목 :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 설교 : 주재형 담임목사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 스터디 가이드 (호환성 버전)
Study Guide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누가복음 24:1~12 | 송파제일교회 주재형 목사

핵심 설교 요약

1 저주를 담당하신 십자가의 속량 (Redemption)

부활의 감격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전제로 합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나무)에 달려 하나님의 철저한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이는 우리의 모든 죗값을 완벽히 지불(속량)하시고 하나님의 공의를 온전히 만족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는 사단의 정죄나 내 자신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나의 모든 죄와 형벌을 끝내신 이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2 절망의 밤을 지키는 묵묵한 헌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며 모든 희망이 끝난 것 같던 캄캄한 절망의 때, 사도들마저 도망쳤지만 아리마대 요셉과 이름 없는 갈릴리 여인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하고 향품을 준비했습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이 아직 없었음에도, 그들은 그저 주님을 향한 '사랑' 하나로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주님은 교회의 어두운 밤을 지키는 이들의 아름다운 헌신을 영원히 기억하십니다.

3 기적이 아닌 '말씀'으로 임하는 부활 신앙

빈 무덤을 보고 당혹해하는 여인들에게 천사들은 과학적 증명이나 압도적 두려움으로 부활을 믿게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예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고 촉구했습니다. 부활의 참된 신앙은 신비한 기적을 육안으로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깨닫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한눈에 보는 구조와 대조

📊 정죄와 십자가의 속량

사단의 참소와 정죄
내용 우리의 실수와 연약함을 고발하며 죄책감과 두려움에 빠지게 함. ("네가 그러고도 구원받겠어?")
우리의 오답 자기 행위를 변호하거나, 남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려 함.
예수님의 십자가 (속량)
내용 예수님이 나무에 달려 하나님의 모든 저주를 대신 받으심으로 모든 죗값을 완전하게 지불하심.
우리의 정답 나의 행위가 아닌 십자가의 완성된 사역만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함.

📊 부활을 증명하는 두 가지 방식

세상의 방식
방식 기절설, 도적설, 환각설 등 의혹에 대한 과학적/논리적 반박이나 압도적 두려움을 통한 강요.
결과 하나를 반박하면 또 다른 새로운 의혹을 제기할 뿐, 진정한 믿음에 이르지 못함.
성경의 방식 (천사들 / 예수님)
방식 "어찌하여 살아있는 자를..." 질문을 던지며, 그동안 들었던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라"고 촉구함.
결과 말씀이 생각나고 성경이 풀어질 때, 심령이 뜨거워지며 부활의 주님을 굳게 믿게 됨 (엠마오 두 제자).

📖 부활의 아침, 맹목에서 생명으로 가는 과정

🌑

1. 안식 후 첫날 새벽

향품을 들고 예수님의 '시신'을 찾기 위해 무덤으로 향함 (죽음을 전제로 한 슬픔).

🪨

2. 빈 무덤 앞의 근심

열려있는 무덤과 사라진 시신을 보고도 부활을 떠올리지 못한 채 근심함.

3. 천사의 선포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며 말씀을 기억할 것을 명함.

📖

4. 말씀을 기억함

기억 속에 잠들어있던 십자가와 부활의 말씀이 깨어나며 참된 부활 신앙이 시작됨.

본문 심화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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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살아 있는 자" (톤 존타, τὸν ζῶντα)
천사가 예수님을 지칭한 "살아 있는 자"의 헬라어 '톤 존타(τὸν ζῶντα)'는 단순히 죽었다가 소생한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정관사(τὸν)와 분사(ζῶντα)가 결합되어 "생명 자체이신 그분", "스스로 영원히 존재하시며 살아 계신 자"라는 위대한 신적 칭호입니다. 우리 인간은 죽음의 지배를 받기에 죽은 자들 사이로 가야 하지만,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은 무덤이 결코 가둬둘 수 없는 분임을 강력히 선포하는 단어입니다.
문맥 엠마오 제자들과 빈 무덤 여인들의 평행선
누가복음 24장은 부활을 믿지 못하는 자들이 어떻게 믿음을 회복하는지를 평행하게 보여줍니다. 빈 무덤을 보고 당황한 여인들에게 천사는 "말씀을 기억하라(6-8절)"고 했고, 엠마오로 가며 실망에 빠진 두 제자에게 예수님은 직접 기적을 보여주신 것이 아니라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27절)"해 주셨습니다. 누가는 부활의 증명이 현상적 기적이 아닌 '성경 말씀의 성취와 깨달음'에 있음을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역사 부활의 첫 증인으로 세워진 여인들
1세기 유대 사회와 로마 문화에서 여성의 증언은 법적 효력이 전혀 없었습니다. (사도들조차 11절에서 여인들의 말을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했다"고 기록합니다). 만약 초대 교회가 부활의 이야기를 지어냈거나 신화로 꾸며냈다면, 당시 가장 공신력 있는 사회적 지위를 가진 남성들을 첫 증인으로 내세웠을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법한 '여성들'을 빈 무덤의 최초 목격자로 여과 없이 기록한 것은, 이 복음서의 기록이 꾸며낼 수 없는 압도적인 역사적 사실(Fact)임을 가장 강력하게 반증합니다.
그리스도 중심 나무의 저주에서 생명의 첫 열매로
신명기 21장 23절은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고 명시합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굳이 가장 수치스러운 십자가(나무) 형벌을 받으신 것은, 모든 사람이 받아야 할 이 끔찍한 하나님의 저주를 인류의 대표로서 홀로 완벽하게 감당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은 죄인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온전히 만족시키심으로써 죽으셨고, 그 완전한 희생 제사를 기쁘게 받으신 하나님은 주님을 사망의 권세에서 일으키사 영원한 생명의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생각과 나눔

Q1. 사단이 내 실수와 죄를 들추어내며 죄책감을 심어줄 때, 나는 나의 결심이나 선행으로 그것을 무마하려 합니까, 아니면 내 모든 죄의 값을 지불(속량)하신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Q2. 교회가 어렵거나 내 삶의 상황이 절망적일 때, 나는 남들처럼 부정적인 말을 하며 떠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아무 소망이 보이지 않는 밤에도 주님을 향한 사랑 하나로 묵묵히 헌신했던 요셉과 여인들 같은 사람입니까?

Q3. 부활의 참된 믿음은 신비한 체험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세상의 유혹과 두려움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오늘 내가 마음판에 깊이 새기고 기억해야 할 생명의 말씀은 무엇입니까?